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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이야기/공포영화

최신공포영화, 시간위의집 결말에 대한 해석

(스포주의)

최신 공포영화 "시간위의집"은 한국형 하우스공포영화를 표방하고 있다. 하우스공포라는 장르는 "샤이닝", "식스센스", "인시디어스", "컨저링" 등 굵직한 헐리웃영화에서 많이 사용했던 장르인데 그래서 혹자에 따라서는 다소 진부한 소재일수도 있고 흥미가 덜 유발될 영화로 보일 수 있지만 그것에 더해 타임슬립이라는 첨가제를 가미해 제법 흥미성과 신선함을 충분히 주었다고 총평하고 싶다. 


하지만 이 영화를 리뷰함에 있어 몇몇 SNS를 참고한 결과 호불호가 갈리는 반응이 많았고 신선함과 흥미로움에서 좋은 평가가 있는 반면 설명이 부족한 설정과 다소 불명확한 결말에 아쉽다는 평도 있었다. 먼저 왜 이런 호불호의 감상이 있는지 전체적인 줄거리를 살펴보면. 



때는 1992년, 난장판이 된 집에서 머리에 상처를 입고 깨어난 여자가 칼을 들고 지하실로 향한다. 그곳에는 이미 칼에 찔린채 죽어있는 남편이 있었고 그 광경을 지하실 창고 앞에서 지켜보고 있는 큰아들이 있다. 여자는 큰아들을 향해 손짓하지만 갑자기 아들은 여자가 보는 앞에서 지하실 창고문 안쪽으로 무언가에 의해 빨려들어가고 만다. 그 사건으로 여자는 남편과 아들을 살해한 혐의로 경찰에 체포되고 장기 복역수가 되는데 25년의 세월이 흘러 병환으로 가석방이 된다. 


한편 그들은 재혼한 부부였으며 아버지가 다른 두 아들이 있었는데 큰아들의 친아버지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일찍 생을 마감했고 그것이 큰아들의 심장병과 관련있음을 여자와 큰아들의 대화에서 짐작할 수 있다. 새아버지는 큰아들과 작은아들을 편애하였고 그때문에 부부는 싸우는 날이 많았으며 그렇게 싸우던 어느날 남편은 화난채 집을 나가고 그날 혼자 남겨진 여자에게 기괴한 일들이 일어난다. 


누군가 집안에 침입해 부인의 방문을 심하게 두드리고 겁에 질린 여자는 두려움에 문을 열어보는데 그때 알 수 없는 누군가의 손과 목격하며 소스라치게 놀라고 만다. 때마침 들려오는 큰아들방에서의 소리에 여자는 아들방으로 향하고 그곳에서 여자는 두려움에 경직된 아들과 아들이 건네준 작은 쪽지를 보게 된다.


"이집을 떠나라, 남편이 아들을 죽이려한다."


그일이 있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큰아들과 작은아들은 동네 슈퍼앞 오락기에서 불법으로 게임을 하다 슈퍼주인할머니에게 걸리게 되고 그 할머니는 집으로 찾아와 아들들의 일을 여자에게 설명하다 그들이 살고 있는 집이 무언가 이상한 기운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 여자에게 귀뜸한다. 여자는 지난밤 벌어진 일과 슈퍼집 할머니의 말에 가톨릭신자면서도 결국 무당을 집안에 들여 굿판을 벌이게 된다. 그리고 굿을 하던 중 그동안 집안에서 들리던 이상한 소리와 그 소리의 정체를 두눈으로 목격하는데.. 


그날 저녁 큰아들은 외출 후 집으로 돌아오고 항상 같이 붙어다디던 동생이 아직 귀가하지 않은 것을 알게 된다. 이윽고 경찰과 가족은 작은아들을 찾아 수색작업을 하는데 애석하게도 작은 아들은 저수지에서 시체로 발견된다. 새아버지는 이 불행이 마치 큰아들때문이라고 여기며 그에게 분노를 표출한다. 



한편 끔찍한 가족살인사건 이후 25년만에 출소한 여자는 집을 찾아온 젊은 신부를 만나게 되고 그와 대화를 하면서 자신이 겪은 과거사를 털어놓게 된다. 신부는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그녀 가족들이 살았던 이 집을 조사하다 1942년 일제강점기 이 집이 부유한 일본인 가족의 집이었으며 그들 역시 지하실 창고에서 실종되었다는 것 또1967년 이 집에서 두 딸과 함께 살았던 여자가 딸들과 함께 지하실 창고 문속에서 사라졌다는 것 그리고 1992년에도 장기복역수 이 여자의 가족일이 발생한 것을 통해 이 기이한 현상이 25년주기로 반복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 사실을 신부에게 전해 들은 여자는 신부가 말하는 과거 실종자들이 25년전 무당의 굿판에서 자신이 목격한 그들과 같은 이들이라는 것을 기억해내고 어쩌면 이제 이집에서 25년전 실종되었던 자신의 큰아들을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 기대하게 된다. 그렇게 신부의 말류에도 홀로 집에 남아 있던 여자는 이윽고 지하실에서 기괴한 소리를 듣고 지하실 창고문을 열어보게 된다.


캄캄한 어둠만이 존재하는 그곳.. 여자는 다시 지하실 창고에서 나오고 폐가나 다름없던 이 집이 25년전 자신이 살았던 말끔한 집으로 변해있는 것을 목격하는데 자신이 평소 사용하던 방으로 들어가려다 이미 방에 있던 자신의 젊은 시절 모습을 보고 크게 놀라고 만다. 그랬던 것이다. 과거 이 집에서 발생했던 기이한 문두드림과 발자국소리가 사실은 25년 후인 자신이 찾아왔던 것이고 남편이 아들을 죽이려 한다는 사실을 젊은 자신에게 알려주기 위해 아들을 통해 쪽지까지 남겼다는 것을. 


결국 고령의 이 여자는 남편이 아들을 죽이려는 것을 막으려다 실수로 남편을 칼로 찌르게 되고 자신을 죽이려는 새아버지를 피해 지하실 창고까지 도망왔던 큰아들은 이 장면을 보게 된다. 그리고 남편때문에 잠시 바닥에서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던 젊은 여자는 아들을 구하러 지하실로 오다가 이미 죽어있는 남편과 멍하니 서 있는 아들을 목격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웠던 큰아들을 다시 만난 반가움도 잠시 아들을 젊은 자신에게서 뺏어 올 수 없었던 고령의 여자는 다시 시간을 거스르는 창고속으로 들어가려는데 그 순간 자신의 아들이 심장병을 앓고 있어 오래 살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아들을 살리기 위해 그를 미래로 데려간다. 결국 25년전 남편의 살인사건과 큰아들의 실종이 전부 자신의 행동이었다는 것을 깨달은 여자는 신부에게 자신의 아들을 맡기고 쓸쓸히 혼자 그 집에 다시 남는다. 추가로 여자를 도와줬던 신부는 과거 큰아들의 친구였으며 25년후 그들은 다시 만나게 된다.


이렇듯 영화는 공포와 타임슬립을 통해 다소 복잡미묘한 공포심과 긴장감을 요소요소에 배치시키며 흥미로운 이야기를 풀어내는데 다소 장황스런 이야기, 해석되지 않는 부분들이 많아 아쉬움이 남는다.



먼저  해석되지 않는 부분들로는


1. 작은 아들은 왜 죽었는가. 저수지가 있는 언덕에서 놀던 작은 아들 주위로 딱히 위험요소가 없었음에도 작은 아들은 물에 빠져버렸다. 이 사건은 새아버지의 분노가 극에 달하는 계기가 되는 사건으로 아주 중요한 부분인데 단순 실족사라고 하기에는 영화상 설명도 부족하고 짐작할 수 있는 복선도 전혀 없다.


2. 늙은 여자는 과거로 돌아갔을때 지하실 창고속에서 한 노인을 만나게 되는데 그 노인은 자신의 큰아들이었으며 어머니를 만나기 위해 75년이란 시간을 기다렸다고 한다. 75년??? 75년이면 짐작컨데 처음 이집에서 기이한 일이 벌어진 1942년 이후부터인데 딱히 1942년 일본인 가족의 실종과 큰아들이 노인이 된 시점과 연관성도 없고 연결고리가 부족하다.


3. 늙은 여자가 25년전 이 집으로 다시 돌아왔을때 그곳에는 큰아들이 두명이 존재한다. 한명의 큰아들은 자신의 방에서 늙은 여자가 써주는 쪽지를 건네받고 있으며 동시에 또다른 큰아들은 자신의 동생방에서 동생을 깜짝 놀래킨다. 유추해보건데 쪽지를 받아든 큰아들은 25년전 원래 그 시점에 있었던 큰아들이고 동생방에서 동생을 돌래켜 주는 큰아들은 이미 한번 지하실 문에서 실종되었고 이미 동생을 잃어버린 그가 과거로 돌아와 실족사한 동생을 보고 싶어 찾아온것으로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이것에 대한 명확한 설명이 부족하고 두명의 큰아들이 있게 한 설정은 큰테두리에서 봤을때 불필요하다. 


4. 슈퍼집 할머니는 과연 누구인가? 이 할머니의 역할은 짧은 출연비중에 비해서 어떤 의미에서는 상당히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이집과 관련된 최초의 언급자이고 여자에게 이 집의 위험성을 경고하여 무당을 부르게 하고 결국 가톨릭신자이면서도 여자가 미신을 믿게 하는데 처음에 본인은 이 할머니가 과거 1942년 최초에 실종된 일본인가족과 관련된 인물일거라 생각했지만 역시나 이 할머니에 대한 명확한 해석이나 설명없이 영화가 끝나버린다.


5. 왜 굿을 하기 위해 온 무당과 무당의 조력자는 여자에게 굿을 하는 동안 눈을 뜨지 말라고 했을까. 만약 그녀가 굿을 하는 동안 눈을 뜨지 않고 무당이 무사히 굿판을 잘 마무리할 수 있게 했다면 작은 아들의 죽음은 일어나지 않았을까?? 공교롭게도 무당의 말을 믿지 않고 여자가 눈을 떠버렸고 그로인해 이 집에 서려있는 원혼과도 같은 실종자들을 여자가 보게 되는데 이 일이 있은 후 작은 아들이 저수지에서 죽었기때문에 혹 부정을 타서 작은 아들이 죽은 것으로 봐야 하는 것일까.  이 역시도 인과관계가 불분명하다. 


6. 끝으로 굿판에서 여자가 본 그들은 귀신인가. 아니면 살아있는 사람인가? 전체적인 틀에서 보면 1942년에 실종된 일본인 가족이나 1967년 실종된 두딸과 여자는 귀신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들 역시 여자의 큰아들과 마찬가지로 지하실 창고문속으로 사라진 이들이고 큰아들이 영화 말미에 자신의 친구인 신부와 세상으로 나와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되는 것처럼 본질적으로 같은 부류인 것이다. 하지만 마치 그들을 평상시에는 보이지 않는 귀신처럼 묘사한 점이나 큰아들과 다른 존재라고 차별성을 두기에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혹 이 영화를 보면서 놓친 부분이 있는 것인지 아니면 잘못 이해한 부분이 있는 것인지 현재로써는 애매한데 나중에 기회가 되면 한번 더 시청해봐야 할 것 같은 필요성을 느낀다. 아마도 이 영화에 대해서 혹평하는 분들의 시각은 위에 나열된 모호성에 기인하는 것으로 유추해 볼 수 있는데 개인적으로도 참신한 소재와 흥미로운 이먀기에 반해 난해한 설정과 불명확한 해석은 아쉬움으로 남는다.